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차범근호/1998 FIFA 월드컵 프랑스/네덜란드전 (문단 편집) == 대한민국의 패인 == 당시 [[거스 히딩크]]는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확실하게 파악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닌 것으로 보았다고 말했다. 일단 체력 문제로, 대한민국 선수들은 전반 30분 경을 넘기고서 확실히 지친 모습이었다. 지난 [[1994 FIFA 월드컵 미국]] 때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과의 경기에서 비록 지기는 했어도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지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여 독일 팀을 긴장시키기도 했는데, 이번 네덜란드전의 선수들은 압도적으로 차원이 달랐다. 연장 전반이 아닌 그냥 전반전도 안 끝난 시점에 지친 것은 적장의 눈으로도 체력이 약점임이 드러난 경기였다.[* 거스 히딩크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조차도 대한민국의 강점은 체력과 정신력, 투지고 단점을 기술, 전술 및 인프라로 꼽았었다. 그러나 거스 히딩크는 부임 후 대한민국의 최대 약점을 체력으로 꼽아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 말을 바로 행동으로 옮겨 당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고도의 체력훈련을 매일같이 받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상대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다가, 정신적으로 쉽게 흔들리는 선수들의 모습이다. 다음은 히딩크 문서의 각주를 일부 따온 것이다. >훗날 인터뷰에서 경기 전 한국 선수들의 매우 무지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약한 듯한 모습을 보고 승리를 확신했다고 한다. 다만 그렇게 대승을 할 지는 본인도 예상 못했다고. 2002년 이전 월드컵만 나가면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쩔쩔매다 자멸했다던 많은 국대 선수들의 인터뷰와 일맥상통한 이야기다. 이렇게 무지한 대한민국 선수들을 네덜란드 선수들은 일부러 쫄게 만들기도 했다. 당시 한국과 네덜란드는 같은 연습장을 썼는데, 한국 대표팀이 도착한 후에도 히딩크는 일부러 훈련을 계속했다. 그런데 30분이 넘도록 대한민국 쪽에서 아무런 항의가 없어서 '얘네들, 아무것도 모르는구나...'라고 확신했다고. 당시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건지 외국만 나가면 뭘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서 쩔쩔매는 매우 무지한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은 다 정보가 공개되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저렇게 외국에 나가서도 뭘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고 준비를 제대로 안하고 나가서 버벅대니, 대한민국 대표팀의 성적이 바닥을 기는 것도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 게다가 선수들조차 대부분 국내나 아시아 무대 정도에서만 뛰었으니 개인 경험도 없어 저런 모습을 보인 것과 거기에 덧붙여 잘못된 훈련 방식과 상대 팀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것도 문제였다. 2002년 월드컵 이후에 출판된 히딩크의 자서전 <마이웨이>에는, 1998년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에 대한 소감을 정확하게 적어놓았다. >...당시 월드컵에서 만난 대한민국 대표팀에 대한 느낌은 간단했다. 개인적으로는 잘하는데 조직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선수들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었고, 공수 협력이 제대로 안돼 우왕좌왕했다. 조직력에 문제가 있다보니, 선수들이 각자 혼자서 뭔가를 해보려 한다는 인상마저 주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선수들은 몸이 굳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은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탈 사커 및 압박 축구와 같은 당시의 축구 전술 흐름에도 완전히 무지한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선수 시절 '유럽물을 제대로 먹은' 차범근이 감독이었어도, 당시의 정보력으로는 세계적 흐름을 읽는데 역부족이었던 듯하다. 애초에 차범근이 몸담았던 독일의 축구 스타일 자체가 이 시기엔 이미 한참 뒤쳐져서 녹슨 전차군단이라며 조롱 받던 시절이었음을 생각해보자. 차범근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9년까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했다. 따라서 [[아리고 사키]]의 [[밀란 제너레이션]]이 몰고온 [[사키이즘|압박과 공간]]이라는 현대 축구의 큰 흐름을 거의 경험해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히딩크가 간격과 공수 협력을 지적했듯이, 당시 국내 축구계는 니폼니시를 제외하면 공수 간격 유지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 [[차범근호]] 항목에도 나오듯이 대표팀의 전술은 빠른 윙어들의 측면 돌파 → 무한 크로스 → 최전방의 황선홍 or 최용수의 받아먹기 이게 전부였고, 중앙은 사실상 유상철 혼자 버티기였다. 이게 아시아에서는 통했지만, 본선에서는 탈아시아급 상대들의 압박에 완전히 녹아내려서 속수무책이 되어버린 것.[* 당시 네덜란드 중앙미드필더진에는 [[에드가 다비즈]], [[필립 코쿠]], [[아론 빈터르]] 등이 포진해 있었다. 유상철 혼자 버틴 한국의 중원을 간단히 잡아먹은 네덜란드 미들진은 넘치는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국의 측면까지 압박하기 시작했고 상술한대로 한국은 윙백들이 중앙수비라인보다 더 후퇴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차범근의 경험 부족과 자질 문제였다. 일단 차범근의 경험 부족이 제일 큰 문제로 초보 감독인 차범근을 덜컥 대표팀 감독에 앉힌 것부터가 문제였다. 히딩크가 그가 문제라고 본 것이 전부 차범근의 경험 부족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당장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현역 시절 뛰어난 선수였다고 해서 명감독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디에고 마라도나]]의 경우, 선수 시절에는 어느 누구도 막기가 어려울 정도로 거의 '''{{{#blue 신적 존재와도 같은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을 했지만, 감독 시절에는 현지 적응훈련 등과 같은 기초적인 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red 인류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 외에도 현역시절 차범근 다음 가는 한국 축구의 전설이자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 모두 소화가 가능했던 [[최순호]]도 지도자 경력은 현역 시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고, 해외 선수들 가운데서도 [[유틸리티 플레이어(축구)|유틸리티 플레이어]]의 대명사 격인 [[루드 굴리트]]도 지도자 경력은 현역 시절에 비해 매우 안 좋은 편이다. 그리고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던 독일의 전설적인 미드필더이자 [[인테르]]의 에이스였던 [[로타어 마테우스]]도 빛난 현역 시절에 비해 지도자 커리어는 정반대로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물론 반례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예시로는 '''[[요한 크루이프]]'''와 '''[[프란츠 베켄바워]]'''가 있다. 이들은 현역 시절 선수로서도 역대급이었지만 감독으로서도 매우 큰 성과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받는다. 그 외에도 [[지네딘 지단]], [[펩 과르디올라]], [[카를로 안첼로티]], [[유프 하인케스]], [[디디에 데샹]], [[디에고 시메오네]], [[안토니오 콘테]], [[신태용]] 등도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내고 감독으로서도 크게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신태용]] 감독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을 [[신태용호/2018 FIFA 월드컵 러시아/독일전|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조별리그에서 탈락]]시킨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의 감독'''이라는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다.] 차범근이 지도자로서 어떤 자질을 가졌던, 1998년 시점에선 3년간 [[울산 현대]]의 감독을 맡은 것이 전부였으니 대표팀 감독이라는 중책을 맡기에는 차범근의 지도자 경험부터가 분명 지나치게 짧았다. 차범근이 국가대표팀을 하면서 나름 선전하면서 도쿄 대첩이라는 업적도 세웠지만 월드컵에서는 언론 통제를 제대로 못한 본인의 실수가 겹치면서 결국 0:5 대패를 기록하는 단초를 마련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국 실력 차이가 가장 크다. 마치 KBL 올스타와 NBA 올스타와 겨루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그 당시 1998년의 사정을 보면 해외 축구의 사정에 익숙하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 유럽파가 늘어났음에도 여전히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알제리 쇼크로 최악의 광탈을 기록했다. 그나마 2002년 4강 이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을 제외한 나머지 월드컵 본선에서 꾸준히 1승과 월드컵 19위 이상은 했다는 것이 고무적인 성과이다.[* 2006 월드컵 17위, 2010 월드컵 15위(16강), 2018 월드컵 19위, 2022 월드컵 16위(16강).] 아시아 축구 대부분이 유럽, 남미에는 힘든 게 현실이며, 설사 차범근이 아닌 그나마 더 능력있는 다른 지도자가 감독이었다 해도 패배하는 건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네번째로 대한축구협회의 실책이 컸는데, 사실 차범근만의 책임이 아니였다. 상술했듯, 차범근은 감독으로써는 초보였고 감독 경험도 국내리그만 3년 한채 국가대표 감독이 되었다. 원래도 파리목숨이었던 국대 축구팀 감독을 하면서 눈앞의 아시아 예선에 신경쓰느라 월드컵 본선 경기에 대비할 여력따위는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최소한 차범근호는 아시아 예선에서는 나름 강력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차범근 본인은 지금도 알려진 기독교 관련 구설수같은 것들만 언론에 나와서 곤욕을 치렀고, 축구협회의 [[사내 정치]]에 휘둘리는 쪽이었다. 대한축구협회가 월드컵 개최지인 프랑스로의 출국 바로 전 날, 중국과 친선경기를 잡은게 대표적인데[* 출국 6월 5일, 중국과의 경기는 6월 4일, 게다가 차범근 조차도 반대한 경기였다. 사실 주전이 나와야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전들이 다 뛰었고, 부상만 쌓인채 아무런 성과 없이 무승부로 비겼다.][* 여담이지만 정확히 4년 후 황선홍은 6월 4일 열린 [[히딩크호/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폴란드전|폴란드전]]에서 골을 터뜨린다.], 이 당시 중국의 거친 플레이로 주요 선수 황선홍이 월드컵 경기에 나오지 못할 정도의 큰 부상을 입는 그야말로 굉장히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말았다. 중국은 당시 대한민국과 월드컵에서 상대해야 될 팀과는 레벨도 완전히 낮았으며 결국 아무 쓸모없는 경기로 체력과 전력만 무의미하게 소모한 꼴이 되었음은 물론, 이후 본선에서 멕시코 및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의 잇단 패배와 그에 따른 조기 탈락 확정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이 때문에 대한축구협회도 큰 비난과 비판을 받았으며 결국 차범근의 경질은 몇몇 실책은 축구협회도 같이 만들었음에도 [[책임전가|그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다 떠넘기고 꼬리자른 셈]]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 때문에,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가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가 형편없는 성적을 거뒀음에도 아버지처럼 월드컵 도중 경질하지 않고, 아시안컵까지 계약을 맺는다는 소식에 대해 자신의 SNS에 에둘러서 불만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는 홍명보에 대한 불만이기보다는 축구협회 측에 대한 불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차범근은 이를 엄중히 제지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차범근]]과 [[홍명보]]는 대회 끝나고도 서로 연락도 안하는 상황을 봤을때, 차두리가 단순 축협에 대한 불만만 표현한건 아닌듯 보인다. 차범근이 대회 끝나고 유일하게 연락도 안온 선수는 [[하석주]]와 [[홍명보]]뿐이라고 직접 밝혔다. 하석주는 본인 때문에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된거 같아 너무 죄송해서 만나지 못했던 부분이었고, 차범근은 경기중에 충분히 있을수 있는 일인데 포옹해주고 다독거리며 잘 풀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